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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선의 역사교실:독립운동가 문창범




독립운동가 문창범



1877년경 부친을 따라서 러시아땅으로 망명한 뒤 1908년 러시아 니콜리스크의 타레스부락에 광동학교를 설립하고 민족교육을 위하여 이 학교를 1916년에 이르기까지 운영한다. 1911년 러시아 니콜리스크에서 배일선전 격문을 작성하고 각지에 발송하고 국권회복을 기도하면서 국내에 무력진공을 계획하는 한편 노령과 중국 동삼성() 지역에 있던 독립운동단체를 규합한다. 1917년 12월 전로한족회중앙총회()를 쌍성에 조직하고 그 회장으로 선임되어 각지에 분회를 설치하여 자치기관으로 육성한다. 1918년 11월 중국 동삼성과 러시아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국가임을 천명할 때 서명자 39인 중 한사람으로 참여한다. 1919년 2월 전로한족회중 앙총회를 대한국민의회로 개칭하고 회장에 선임되어 노령지방에서의 독립운동을 주도하여 나갔다. 동년 3월 17일 국내에서의 3ㆍ1 독립운동에 호응하여 독립선언서를 대한국민의 회장의 명의로 작성하여 러시아 해삼위()에 있는 일제 영사관으로 송부하여 일제정부에 전달하도록 하는 한편 기타 11개국 외국 영사관에 배부하며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가지고 거리를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하도록 자동차 여러 대에 나누어 승차한 뒤 독려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한다.

한편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는 그곳에 망명하여 있던 독립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3ㆍ1 독립운동 정신의 결집체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상해에 수립하고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하여 내각을 조직할 때 그는 교통부 총장으로 선임된다. 동년 4월 23일에는 국내 13도 대표 이만직 외 23명이 국민대회를 열어 임시정부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내각조직으로 집정과 총재에 이승만, 국무 총리에 이동휘()가 선임되었는데 문창범은 교통부 총장으로 피임된다.

그리고 1919년 9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 각 단체 각 당파를 총망라하여 대통령제로 조직을 개편할 때 그는 다시 교통부 총장에 선임된다. 1920년 중국 상해에서 대한적십자사와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동년 4월 대한국민의회를 해삼위에서 무시로 이전한 뒤 흑룡강주에 한족공산당 본부를 설치하여 러시아 공산당 정부의 원조를 받아 군대를 편성하였으며 ‘자유보’, ‘신세계’ 등 홍보물을 발행하면서 독립운동 대표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조국독립을 성취하고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다.

1921년 2월 22일 고려공산당 연추() 지부의 책임을 담당하여 중국 동삼성 및 노령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의 독립운동을 지도하였으며, 치타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러시아에 거주하는 귀화한 교민들에게 입교를 권유하면서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동년 6월 독립군의 청산리() 전쟁 후 러시아 하바롭스크 소재 소련 공산군 제2군단과 교섭하여 간도지역 독립군의 러시아 자유시()로의 이주를 성사시켰다. 자유시참변 이후인 1922년 6월에는 노령 무시에 고려중앙정청을 조직하고 이동휘와 함께 고문으로 활동한다. 1923년 6월에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소집한 국민대표회에 참가, 창조파에 속하여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34년 10월 일제가 보낸 첩자에게 독살 당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창범 [文昌範]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 권혁선의 역사교실     2015년 03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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