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선의 역사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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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학습자료] 

일본과 러시아 북방4도 이야기2
권혁선  (2015년 07월 19일 11시14분54초)  


북방 4 도(島)와 마지막 생쑈<中>

 


- 1945년 8월 6일, 특수하게 개조된 B-29 폭격기 애놀라 게이(Enola Gay)가 히로시마(広島)에 리틀보이(Little Boy)라고 명명된 우라늄 원폭을 투하한 이틀 후인 8월 8일, 스탈린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고 다음날이 8월 9일 0시를 기해 일제히 침공을 개시했다.
- 이는 사실, 태평양에서 연합군의 전쟁노력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최후의 순간에 끼어듦으로써 전리품을 챙기겠다는 고도의 정치 술수에 가까웠고(일본과의 중립조약을 파기한 것은 훨씬 전인 4월 5일의 일이었다..) 스탈린은 서부전선 전쟁 종결의 단계에서도 군사적이 아닌 정치적 이익을 목적으로, 바로 독일로 진격하지 않고 동유럽 일대를 모두 확보한 다음에야 베를린으로 진격했었다(따지고 보면 2차 대전을 통해 목적을 대부분 달성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인간은 바로 스탈린이었다..)

 


- 소련군이 만주를 비롯, 전 전선에 걸쳐 침공을 개시하고 8월 9일, 나가사키(長崎)에 다시 한 발의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마침내 일본은 포츠담 선언의 수락을 결정하고 8월 14일, 주 스위스 공사 카세(加瀬), 주 스웨덴 공사 오카모토(岡本)를 통해 연합국에게 무조건적인 항복을 통보한다.
-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는 라디오를 통해 일본 전국에 항복을 알리는 대국민 방송을 실시하였고(이때 최초로 일본인들은 히로히토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들어보면 “살아있는 신”이라는 작자의 목소리가 꼭 염소 울음소리 같다..메에~~) 전 군(軍)에 대해 적대행위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날렸다.

 

 

   "살아있는 신"인줄 알았는데 목소리는 염소에 생긴 건 몽키였다..옷~ 힌두교 신? -_-;;

 

- 한편, 스탈린은 소련군이 일본과 교전에 들어가기 앞서, 이미 1944년부터 소련군이 일본 열도를 침공할 수 있는 능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장비 지원을 지속적으로 미국에 요청했고(쉽게 말해 상륙작전 할 수 있도록 상륙함이랑 중장비 내놓으라는 얘기다..)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 해리먼을(W. Averell Harriman) 불러, 만약 이 준비가 안 되면 그가 약속한 독일의 패배 3개월 후에 대일전선 참전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되도 않는 땡깡을 부리기도 하였다(그러면서도 스탈린은 일본을 공습할 수 있도록 소련 내에 기지를 설치하게 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은 쌩깐다..아..진정한 양아치...-_-;;)
- 이에 미국은 대소 렌드리스 항목에 소련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12가지 타입의 각종 상륙정 및 상륙함, 항공기를 포함시켰고, 1945년 봄과 여름에 걸쳐 비밀리에 149척의 각종 선박은 물론 관련 기술을 소련에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련 해군 장교들과 승조원들을 알래스카 콜드 베이(Cold Bay)로 불러 상륙 및 소해 훈련을 시켜주기도 하였다(당시 미국은 호갱도 보통 호갱이 아니었다..아주 무덤을 판다는..)

 

 

                  스탈린이 땡깡을 부리자 호갱 미국은 또 겁나 퍼다주기 시작했다...

 

- 이런 미국의 호갱짓에도 불구하고, 1945년 8월까지 소련군은 대규모로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를 침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려고 하던 스탈린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미국의 신무기 원폭이 떨어지자 앗뜨거를 외치며(원폭의 존재는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의 연기는 불가능 하다고 판단, 전면적인 일본 침공에 나서게 되었다.

 

                    만주를 침공한 소련군이 일본군을 무장 해제 시키고 있다..

 

- 한편,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체결된 비밀 협정에서 소련은 대일 전쟁에 참전하며 승전시, 북위 50 도선 이남의 남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소련이 차지하는 것으로 연합국과 스탈린은 합의하였지만 8월 15일, 트루먼이 스탈린에게 보낸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위한 지역별 분담에 관한 통지에는 쿠릴 열도에 대한 소련의 분담은 지정되어있지 않았다.
- 이에 따라 소련은 쿠릴 열도 및 홋카이도 북동부(쿠시로(釧路)와 루모이(留萌)를 연결한 직선 이북)를 소련 담당 지역과 할 것을 미국에 요구했고, 미국은 17일에 통지한 답변에서 쿠릴 열도는 동의했지만 홋카이도는 얄타회담 협정에 들어있지 않다며 거부했다. 

                    처음 스탈린이 요구한 소련의 일본 점령 지역..이렇게 됐었어야... 

 

- 이윽고 일본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한 당일인 1945년 8월 15일, 소련 극동군 사령관 알렉산드르 바실례프스키(Aleksandr M. Vasilevsky) 원수는 소련 제 2극동전선 사령관 막심 푸카예프(Maksim A. Purkayev) 대장과 소련해군 태평양 함대 사령관 이반 유마쉐프(Ivan S. Yumashev) 제독을 불러 소련군의 쿠릴 열도 점령 첫 단계로, 캄차카 반도 바로 남단에 위치한 시무슈(Shumshu) 섬과 파라무시로(Paramushiro)의 점령을 명령했다.
- 당시 소련군은 이 두 섬만 확보하면 나머지 쿠릴 열도의 다른 섬들은 쉽게 점령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하였고 현장 지휘관으로 상륙군은 캄차캬 수비대 사령관 그네치코(Aleksandr Gnechko) 소장을, 수송대는 포노마레프(Dmitri G. Ponomarev) 해군 대령을 임명, 48시간 이내에 작전에 돌입하도록 지시했다.
- 이때 시무슈 섬 점령을 목적으로 투입된 소련군 전력은 상륙군으로 육군 제 101저격사단 예하 1개 연대와 2개 대대 병력, 해군의 1개 보병 대대를 포함, 총 8,821명으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경비함 2척, 기뢰 부설함 1척, 소해정 4척, 수송함 14척, 상륙용 주정 16척 등 총 54 척의 함선을 이용, 슈므슈 섬에 상륙할 예정이었으며 육군 제 128혼성 비행사단과 해군의 1개 비행연대 총 78기의 공중 지원을 받도록 되어있었다.

 

 

            시무슈 셤 침공작전에 동원된 미국제 LCI 상륙함과 야포를 적재하는 모습..

 

- 시무슈 섬(Shumshu, 일본명 占守島)은 쿠릴 열도 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동쪽은 제 1 쿠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캄차카 반도 로빠토카 곶(Cape Lopatka)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제 2 쿠릴 해협 너머 파라무시로(Paramushiro) 섬이 위치하고 있다.
- 면적은 385㎢로, 해발 200미터 정도의 완만한 구릉이 이어진 늪 지역과 초원 지형이며 오호츠크 해와 태평양에 둘러싸여 한여름에도 평균 섭씨 15도로 선선하며 겨울엔 영하 15도의 혹한과 짙은 눈보라가 날리는 곳이었다.

 

 
- 북쪽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날씨도 좋지 않아 5~6월이 되어야 봄이 오는데, 봄이 와도 바닷가에는 여전히 유빙이 떠다니고 시계가 5~6m밖에 되지 않을 만큼 안개가 짙게 끼곤 했으며 여름이 오면, 차가운 바다안개가 가끔 끼는 정도로 안개는 약해졌지만 기온은 여전히 낮았기 때문에 이곳의 일본군 병사들은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어 1년 내내 동복만 입고 지냈다고 한다.
- 또한 강한 바람 때문에 나무가 위로 자라지 못하고 땅으로 기게 되는데, 10m가 넘는 소나무가 뱀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땅바닥에 붙어 있는 이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으니, 도로가 아니면 차량의 통행이 거의 불가능했고 따라서 통행의 불편함이 심각했지만 이런 특징은 어떻게 보면 방어자에게는 유리한 것이기도 했다.

 


- 이런 지독한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이 섬은 소련과의 국경이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전략적으로 꽤나 중요해서 오호츠크 해 입구를 통제할 수 있는 요지였음은 물론, 미국과 소련의 연락 및 원조 루트도 이 섬 남북의 쿠릴 1, 2 해협을 지났으므로 이곳은 이를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장소였다(물론, 일본은 소련이 무서워서 전쟁 내내 시도조차 안 했다..덕분에 지구 반대편 독일군만 죽어났다..)
- 시무슈 섬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진 섬인데다가 점령하기조차 까다로웠는데, 섬 주위를 빙 두른 해안단애 때문에 병력을 상륙시킬만한 해안이 별로 없었고 게다가 상륙 후에도 늪 지대와 나무 덩굴로 상륙군의 진격이 무척이나 힘든 지형이었다.

 

 


- 이곳에 일본은 육군 제 5 방면군이 미국의 침공을 예상하고 1943년 말부터 요새화를 진행했고 비록 1945년, 본토 결전과 홋카이도 본섬 방어를 위해 대부분의 병력이 철수했지만, 패전 시점까지 육군 제 91 보병사단의 2 개 여단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그때까지 이곳에선 거의 전투가 없었기 때문에 비축된 식량과 탄약도 비교적 풍부했다.
- 게다가 시무슈 섬의 일본군은 대전말기에 급히 징집된 병사들이 아니라 대전 기간 동안 중국, 태평양 전선에서 전쟁 경험을 쌓은 베테랑 병사들이었으며 여기에 더해 만주에서 이동한 나름 일본군의 정예 병력인 제 11 전차연대도 주둔해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일본군의 96식 15센치 캐논포의 잔해..

 

- 일본 해군은 쿠릴 방면 특별 근거지대를 두고 있었지만, 육군과 마찬가지로 주력은 홋카이도로 이동하며 섬 남부 비행장에 소수의 경비대를 배치한 정도였고 항공 전력은 육군 비행 전대와 해군 항공대를 합쳐 불과 8기의 구형 전투기가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 따라서 시무슈 섬의 주둔 일본군은 제 91 보병사단 산하 제 73여단(4개 대대)과 282 독립보병대대 병력을 합하여 총 8,500명과 제 11 전차연대의 68대의 전차(97식 중전차 을형 19대, 97식 중전차 20대, 95식 경전차 25대), 육군 항공대의 1식 전투기 4기, 해군 항공대의 97식 함상 공격기 4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시무슈 주둔 일본 해군 97식 함상 공격기와  제 11전차연대의 전차들

 

- 일본군의 대비태세를 보면, 일본군은 전쟁 말기까지 가상 적은 무조건 미군이었으며, 소련군에 대한 대비는 특별한 무슨 전술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미군에 대한 전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었으므로 1945년 5월에는 파라무시로 섬 남부의 육군 부대를 제 2 쿠릴해협에 인접한 지역에 집중 배치시키고, 시무슈 섬에 대해서도 섬 남부에 4개 대대를 집중 배치하여 상륙지점으로 거의 유일한 북부에는 유격전 임무를 수행할 1개 대대만 배치되었다(말 그대로 전쟁 말기 써 먹던 소모전술을 그대로 옮겨 놨다..)

 

                    전쟁 말기 써 먹던 소모전술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일본군의 방어 계획..

 

- 한편, 시무슈 섬을 공략하기 위해 48시간의 준비기간을 통보받았던 소련 침공군은 섬에서  315km 떨어진 페트로파블롭스크-캄챠트스키( Petropavlovsk-Kamchatsky)에서 세계에서 가장 안개가 짙은 해협을 건너기 위해 24시간 만으론 무리라며 작전 연기를 사령부에 요구했고 이에 따라 상륙은 8월 18일에 감행하도록 변경되었다.
- 당시 소련 침공군 지휘관들은 그들의 정보 보고서를 인용, 비록 히로히토가 8월 15일에 항복 발표를 하고 시무슈 섬 주둔 일본군이 이를 수신하였다고 믿어졌지만, 이는 단지 작전 과정에서 하나의 변수일 뿐, 작전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 따라서 침공 작전은 일본의 항복과는 별개로, 정규 상륙 작전 형태로 감행하도록 결정하였고 당시 소련군 일선 지휘관들의 가장 큰 걱정은 상륙 작전 시 충분한 포병과 해군의 사전 함포 지원의 부족이었다.

 

          상륙함과 소형 함선들뿐, 소련군은 전함이나 순양함 같은 함포 지원 세력이 없었다..

 

-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소련 침공군이 가지고 있던 자장 큰 함정인 소해함 오오츠크(Okhotsk)가 보유한 함포란 게 달랑 130mm(5.1 인치) 함포 1문과 76.2mm(3 인치) 함포 2문이었으니 소련 해군의 능력으로 상륙군을 위한 충분한 화력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둘째 치고, 일본군 해안포에 밥이나 안 되면 다행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 이에 따라 상륙군 사령관 그네츠코 소장은 시무슈 섬과 12km 폭의 해협을 건너 마주보고 있는 캄차카 반도 남쪽 끝 로빠트카 곶에 설치되어있던 4문의 130mm(5.1 인치) 해안포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 그러나 당시 소련군 보병은 신속하게 해안에 상륙, 교두보를 설정하고 상륙정에서 야포와 박격포를 양륙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믿기 어려웠으며 상륙전 경험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상륙전 경험이라곤 개뿔도 없었던 시무슈 침공 소련군..일단 배 타고 가 보자...

 

- 어쨌든 소련의 시무슈 섬 침공군을 실은 상륙함대는 은 1945년 8월 17일 05시, 페트로파블롭스크-캄챠트스키를 떠나 21시간의 항해 후, 8월 18일 02시, 제 1 쿠릴해협에 도착하였고 해상에서 상륙을 위한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출처>
http://forum.warthunder.com/index.php?/topic/48488-type-95-ha-go/page-2
https://en.wikipedia.org/wiki/File:USS_Hoquiam_(PF_5).jpg
https://en.wikipedia.org/wiki/Project_Hula
http://forum.axishistory.com/viewtopic.php?t=163027&start=15
http://www006.upp.so-net.ne.jp/yamako/houheikatuyaku.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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