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선의 역사 교실

전 체:플래시 파일 |동영상 파일 |하멜 |이사벨라 비숍 이야기 |신문자료 |오디오북 |대학입시자료 |기타학습자료 |
[기타학습자료] 

일본과 러시아 북방4도 이야기
권혁선  (2015년 07월 19일 11시11분38초)  


북방 4 도(島)와 마지막 생쑈<上>

http://blog.daum.net/mybrokenwing/369 봉달의 삐딱한 전쟁사에서 가져온 블로그 내용입니다.

 

- 현재 일본이 주변국들을 상대로 줄기차게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지역이 세 곳 있다.
- 이 세 곳은 하나는 당치도 않은 우리의 독도요, 하나는 중국과 실랑이를 벌이며 난리치는 센카쿠 열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 스스로 북방 4도(島)라 부르는 쿠릴 열도(Kuril Islands 일본명 千島列島) 남단의 네 개 섬이다(그러고 보니 이것들, 천지사방으로 지랄하고 있다는..)
- 이들이 주구장창 목에 핏대를 세우는 이 북방 4도는 쿠릴 열도 최남단 쿠나시르(Кунашир, 일본명 구나시리(國後)), 이투루프(Итуруп, 일본명 에토로후(擇捉)), 시코탄(Шикотан, 일본명 시코탄(色丹)), 하보마이(Хабомай, 일본명 하보마이(齒舞)) 제도의 네 섬들을 말하며 여기서 하보마이 제도는 실제로 하나의 섬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자잘한 섬들이므로 북방 4도라고 해서 섬의 숫자가 정확히 네 개는 아니다(하보마이 전체를 하나의 “섬”으로 묶어 편의상 네 개 섬이라 하는 거..)

 

    일본이 지네 땅이라고 핏대를 세우는 곳이 북해도 옆에 나란히 붙은 이 네 개의 섬이다.

 

- 쿠릴 열도는 일본의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 사이를 징검다리 연결하듯 펼쳐져 있으며, 네무로 해협을 사이에 두고 쿠나시르 섬과 하보마이 제도가 마주보고 있는데 이 쿠릴 열도라는 게 러시아 본토와 일본 본토라 할 수 있는 북해도를 연결하고 있으므로 지정학적 위치로 보면 전부 러시아 땅이던가 아니면 전부 일본 땅이라고 해야 할 듯도 한데 왜 이 4개 섬만 가지고 일본은 저 난리를 치는 건지 약간 의문이 들기도 한다(뭐, 우리 문제 아니니까...-_-;;)
- 따라서 먼저 오늘의 본격적인 스토리인 “마지막 생쑈”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본은 왜 이걸 빼앗겼다고 지랄하고 러시아는 왜 못 주겠다고 난리치는 지, 일단 그 배경을 먼저 짚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일본 외무성이 제작한 프로파간다용 포스터..내용은 걍 헛소리다...

 

- 일본이 주변국들과 잘 지내지는 못 할망정, 주구장창 땅 싸움하며 지랄하는 근거가 바로 “역사적으로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주장인데, 사실, 이걸 조금만 파보면 말짱 헛소리라는 게 금방 드러나게 되며 우리 독도 부분은 소귀에 경 읽기도 아니고 이젠 말하기도 귀찮으므로 넘어가고 센카쿠는 오늘의 이야기와 별 관계가 없으므로 일단 패스하겠다.

 


- 일본이 그렇게나 러시아와 목에 핏대를 세우는 쿠릴 열도 중 북방 4도의 일본 고유 영토 주장은 애초부터 헛소리인데, 사실 홋카이도와 사할린, 쿠릴 열도는 본래 아이누라 불리는 민족의 땅으로 이들이 고유의 독립적인 국가 체제를 이루지 못했으므로 19세기 중반, 서슬 퍼런 제국주의의 광풍 속에서 먼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이 급선무였다(먼저 먹는 놈이 임자..-_-;; 북해도도 사실 일본은 1784년에야 개척 비스무리하게 가봤고 1869년엔 에조 공화국이라고 잠깐이지만 독립한 적도 있었으며 1871년이 되어서야 중앙정부 관할 하에 놓였으니..) 
- 1855년, 최초로 러시아와 일본 에도 막부 사이에 국경선에 관한 교섭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조인된 러일화친조약(露日和親条約)으로 러일간 국경선은 쿠릴 열도 남부 이투루프(Iturup) 섬과 우루프(Urup) 섬 사이로 정했고, 사할린 섬은 서로 투닥거리다 그냥 양국 공동 거주지로 일단 놔두기로 결정되었다(이때는 걍 땅 따먹기라 역사적 배경? 그딴 거 없었다..) 

 

 

                             러일화친조약 조약서와 이때 책정한 국경선..

 

- 이후 러시아가 극동지역에서 남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바짝 쫄아 그냥 뺏기는니 일본이 사할린에서 손을 떼는 대가로 쿠릴 열도 전체를 일본에게 달라고 1875년, 러시아에 제안했으며, 이것을 러시아가 받아들여 쿠릴 사할린 교환조약(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이라고도 한다..)이 체결되었고 일본은 사할린을, 러시아는 쿠릴 열도를 포기했다.

 

                     1875년, 쿠릴 사할린 교환조약으로 만든 두 번째 국경선

 

- 이게 이렇게 되었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잘 지냈으면 다행인데, 일본이 달리 뒷통수 치기의 달인들이겠는가?
- 이것들은 자기네들의 힘에 조금 커졌다 싶은 생각이 들자 바로, 당시엔 행님들이었던 영미를 등에 업고 1904년 2월 8일, 일본 연합함대가 뤼순군항의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 이 순간, 1855년과 1875년에 맺어진 양국 간의 영토에 관련된 조약은 자동으로 폐기된 것이며 특히 러시아와 일본 양국이 영토에 관한 문제로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양국 간에 영토에 관한 조약은 전쟁이 벌어지면 자동으로 폐기된다는 것이 국제법의 기본이고 게다가 전쟁을 먼저 기습적으로 일으킨 것은 일본이므로 스스로 조약을 파기한 셈이 되었다.
- 어쨌거나 러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의 입장에선 불평등한 조약인 포츠머스 조약이 1905년에 체결되었고, 이 조약에 따라 일본은 사할린 섬의 북위 50도 이남 지역을 수중에 넣었다.

 

 

              일본의 기습으로 시작된 러일전쟁과 1905년 포츠머스 조약 이후의 국경선

 

- 이후로도 일본은 시베리아도 어떻게 해 보겠다고 1차 대전 당시 꾸역꾸역 혓바닥을 날름 거렸으며(물론 여기선 쫓겨왔지만..) 마침내 1937년, 2차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1941년엔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스스로 헬게이트를 열어 제꼈다.


-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0월,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삼국 외무 장관 회담이 열렸고(모스크바 회담) 크렘린의 카테리나 사랑방 만찬에서 스탈린은 옆에 앉아있던 코델 헐(Cordell Hull) 미 국무 장관에게 독일전 종료와 동시에 대일전에 참전할 것이란 의사를 전달했다.
- 이어 1943년 11월 말, 이란의 테헤란에서 열린 연합국 정상 회담(테헤란 회담)에서 루즈벨트와 처칠은 스탈린에게 1944년 5월까지는 서부 유럽에서 제 2 전선을 열 것을 약속했고 대신에 스탈린은 독일 패전 후 대일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분명히 하였으며 스탈린은 이에 대한 "대가"는 추후에 알려주겠다고 언급했다(나중에 말해줄게...이러면 살짝 무섭다는..-_-;;)

 

          영미의 유럽 제 2 전선 구축과 소련의 태평양 전선 참전을 맞바꾼 테헤란 회담..

 

- 1945년 2월, 전쟁의 막바지에 열린 얄타회담에서 마침내 전승국 간의 논공행상이 논의되었고 일본을 좀 더 빨리 무릎 꿀리기 위해 소련은 독일 항복 후 2~3 개월 후 참전하겠다고 밝혔으며 그 대가로 일본 패전 후 러일 전쟁으로 뺏겼던 남부 사할린을 다시 반환받고 쿠릴 열도를 점령하겠다고 밝혔다.
- 이 자리에서 스탈린은 홋카이도 동북부의 점령도 요청했지만 회담 당시 미국은 그건 추후 생각해보자고 두루뭉술 넘어갔고 종전 후, 소련은 홋카이도 동북부도 점령하겠다고 떼를 썼지만 트루먼은 그 조건은 얄타 협정에 없었기 때문에 안 된다며 거부했다(이에 삐친 스탈린은 얄타 회담 시 쿠릴 열도 중부의 한 섬에 미군 기지를 설치하도록 요구한 미국의 요청을 종전 후 매몰차게 거부했다..-_-;;)

 

 

                  승전국의 논공행상 얄타 회담과 스탈린이 원한 댓가(분홍색)..

 

- 마침내 독일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인 1945년 4월 5일 저녁, 소련 외상 몰로토프는 모스크바 주재 일본 대사 사토 나오타케(佐藤 尚武)를 외무성으로 불러 소련 정부는 일소 중립 조약( Japanese-Soviet Neutrality Pact)을 파기한다고 통보하였다.
- 독일과 소련이 체결한 독소중립조약에 따라 1941년 4월 13일, 일본과 소련이 체결한  일소중립조약은 독소 전쟁에서 소련에게 엄청난 도움을 제공했고 역으로 동맹국 일본이 아몰랑으로 일관하는 사이, 독일군은 일본 영해를 지나온 스팸을 먹으며 미제 무기를 가진 소련군에게 사정없이 마빡을 두들겨 맞았다.

 

  일소중립조약 체결시의 스탈린과 마스오카 일본 외상..팔짱까지 끼면서 알랑방귀를..등신..

 

- 일본이 독소전쟁에서 독일에 군사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둘째치고, 소련이 미국의 렌드리스로 막대한 원조을 받는 것만 차단했더라도 소련은 전쟁 초반에 무너지며 패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일본의 중립 덕분에, 소련은 전쟁의 전환기에 극동지역에서 서부전선으로 약 25만명의 병력을 이동 시킬 수 있었고 미국으로부터 전쟁 수행에 필요한 막대한 물자를 원조 받을 수 있었다.

 

막대한 미국의 렌드리스 물자가 수송된 북태평양 원조 루트..동맹국 일본은? 걍 구경했다..-_-;;

 

- 물론, 일본도 이 조약을 통해 동맹국 독일이 죽던 말든 많은 이익을 보았는데, 당시 일본은 소련으로부터 약 4천만 톤의 석탄, 1억 4천만 톤의 목재, 5천만 톤의 철, 천만 톤의 수산물 그리고 시베리아의 금을 공급받았다(이것들의 일관된 정책은 동맹국이고 나발이고 모르고, 나만 좋으면 돼!...이거다..박통이고 오바마고 제발 역사책 좀 읽기를 권장한다..일본이라는 국가가 생긴 이래, 이들의 대외정책은 저기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난 적이 없다..뒷통수 치기는 아주 전통이고..이번 군함도만 보더라도 돌아서면 바로 뒷통수를 날리쟈나?)

 

 강제노동 인정할테니 도와주시오...엥? 그런 소리 한 적 없는디? 그럼 그렇지..양아치 쇅기들.. 

 

- 어쨌거나 소련은 1945년 2월, 일본과의 중립조약을 파기했고 일본 내에서는 이제 새 됐다며 난리 부르스를 떨며 스탈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징징거렸으나, 그건 늬네 사정이고 이미 소련은 얄타 회담에서 연합국들과 극동에서의 영토적 양보를 대가로 일본과의 전쟁에 동참할 것이라 약속했으므로 유럽에서 승리를 거둔지 3개월 후인,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일본에 대해 일방적인 선전포고를 날렸다(일본은 소련식으로 다루는 게 정답이다..)    
- 이윽고 선전포고 다음날인 8월 9일 0시를 기해, 극동 지역의 전 소련군(서부전선에서 많은 병력들을 빼내 이동시켰다..)은 즉각 전투행동에 돌입하였고 남부 사할린, 만주, 한반도 북부 등으로 일제히 침공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출처>

http://blog.goo.ne.jp/deception_2010/e/f925b64f8b9ff2840d7f1021b98ba527
http://blogs.yahoo.co.jp/naomoe3/38043495.html
https://ja.wikipedia.org/wiki/%E5%8C%97%E6%96%B9%E9%A0%98%E5%9C%9F%E5%95%8F%E9%A1%8C
http://www.pref.hokkaido.lg.jp/sm/hrn/hoppouryoudo_history.htm
https://ja.wikipedia.org/wiki/%E9%BB%84%E6%B5%B7%E6%B5%B7%E6%88%A6_(%E6%97%A5%E6%B8%85%E6%88%A6%E4%BA%89)
http://animalfarmgoedu.weebly.com/joseph-stalin.html
http://www.o5m6.de/eastern.html

 






  청산리 전투- 러시아 모시 나강 91식 소총2
  위화도 회군 토론 활동 기록장


관련게시 : 1  
번호 제   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 일본과 러시아 북방4도 이야기 권혁선2015.07.19 7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