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이의 역사 교실 권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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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천태종
admin  (2009년 10월 13일 16시36분53초)  


자료1) 선가에서는 통발이나 덫(경론의 비유)에 의거하지 않고,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고 하는데, 이는 가장 높은 근기의 지혜있는 이에게 맞는 것이다. (그런데도) 가장 낮은 근기의 사람이 말하는 것을 귀로 듣고 배워 가지고 한 법을 증득했다고 하며 (스스로 만족하고서) 경론을 가리켜 '풀로 만든 개(무가치한 것)요 깻묵지게미(보잘 것 없는 것)'라고 한다. 이는 잘못이 아니겠느냐. (「靈通寺碑文」 『大覺國師文集外集』12)  


자료2)


해동에 불법이 전래된지 7백여 년 동안 여러 종파가 다투어 연설하고 모든 가르침이 퍼졌지만 천태의 한 종파만이 그 밝음이 가리워졌다. 과거 원효(元曉)보살이 훌륭함을 칭찬하였고 이어서 체관(諦觀)법사가 전해 드날렸다. (「新創國淸寺啓講辭」 『大覺國師文集』3)  


자료3)  


저는 머리를 조아려 귀명하며 천태교주(天台敎主) 지자대사(智者大師)께 아룁니다. 일찍이 듣건대 대사께서는 ' 오시팔교(五時八敎)로써 동쪽에 전해진 부처님 1대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분류하여 해석하였는데 이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없다.' 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후세에 불법을 배우는 이들이 이에 의거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조사 화엄소주께서도 ' 현수 5교와 천태교의는 크게 같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용히 생각하옵건대, 우리나라에도 옛적 체관(諦觀)법사가 대사의 교관(敎觀)을 강연하며 해외까지 유통시켰으나 그것을 익혀 전하는 일이 끊어져 지금은 없습니다. 제가 분발하여 뭄을 돌보지 않고 스승을 찾아 도를 묻던 바, 이제 전당(錢塘)의 자변대사 강석에서 교관을 이어 받고, 그 대략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후일 고국에 돌아가면 목숨바쳐 선양하여 대사께서 (중생을) 위하여 가르침을 펴신 노고의 덕에 보답할 것을 이에 서원합니다. (「大宋天台塔下親參發願疏」 『大覺國師文集』권14)  


자료4) 


나는 일찍이 학생들에게 교관(敎觀)의 본말을 가르쳐 보이기 위하여 " 상(相)에 이르러 상을 얻고 이를 부연하면 10현(玄)이 되고 이를 고치면 5교(敎)가 된다."고 말했는데 그말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떤 배움에 뜻을 둔 군자가 있어 일승(一乘)에 뜻을 같이 두고 만 가지 행실을 같이 행하며, 큰 마음은 변하지 않고 큰 바램을 몸에 두어 보현(普賢)의 도를 붙잡고 행하여 노사나(盧舍那)의 경지에 들어가 마음껏 누리고자 하였다고 하자. 그러한 이는 먼저 삼관 오교(三觀五敎)로써 법의 뜻을 깊이 연구하여 도에 들어가는 안목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진실로 이 보배로운 법을 떠나 성불할 다른 길이 없으니 일시적인 가르침이 극도에 달하면 과연 실제적인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스승이 일찍이 말하기를 '돌이켜 보건대 올바른 법의 시대에도 밝은 빛이 숨어 들어 있었는데 다행히 상법(像法)의 시대에 이런 현묘한 교화를 받는다." 고 하였다. 이어서 지금 탑사(塔寺) 시대의 말기에 살아 장차 투쟁의 시기가 다가오는데 이해하기 힘든 경전을 그대로 들으니 몸을 부수어도 그 경사스러움을 갚을 수 없다. 마치 큰 바다에 빠졌을 때 방책을 만나고 높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신령스런 학을 탄 것 같구나. 기뻐 뛰며 춤을 추게 되니 얼마나 감격스럽고 경사스러운가. 오직 성현이라야 나의 마음을 아실 것이다." 고 하였다.  


… 세상에서 말하는 균여(均如) 범운(梵雲) 진파(眞派) 영윤(靈潤) 등 여러 스님의 책은 잘못된 것이다. 그 말은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뜻은 변통이 없어 스승의 도를 어지럽게 하므로 후생을 미혹시킴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내 비록 못났으나 글을 써서 그것을 배척할 뜻이 실로 있었거늘 하물며 우리의 그윽한 배움이 『화엄경』에서 선재(善財)를 보고자 하여 법을 구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서야.  


… 나는 매번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책을 덮고 크게 한탄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성인의 가르침을 얘기함은 이를 살천하게 하는 데 있으므로 다만 입으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실은 몸으로 행동하려는 것이다. 어찌 한쪽에 매달려 있는 박처럼 뜻함에 쓰임이 없어 되겠는가. (나는) 몸을 잊고 도를 묻는 데 뜻을 두어 다행히 과거의 인연으로 선 지식을 두루 참배하다가 진수(晉水) 대법사 밑에서 교관(敎觀)을 대강 배웠다. 법사는 일찍이 제자들을 훈시하여, "관을 배우지 않고 경(經)만 배우면 비록 오주(五周)의 인과(因果)를 들었더라도 삼중(三重)의 성덕(性德)에는 통하지 못하며 경을 배우지 않고 관만 배우면 비록 삼중의 성덕을 깨쳤으나 오주의 인과를 분별하지 못한다. 그런즉 관도 배우지 않을 수 없고 경도 배우지 않을 수 없다." 고 하였다. 내가 교관에 마음을 쓰는 까닭은 다 이말에 깊이 감복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량(淸凉)이 "방촌(方寸)의 마음이라도 비춰보지 않고 헛되이 성령(性靈)을 저버린다." 고 한 말도 또한 이와 같은 뜻이다. 이것은 화엄을 전수받으면서 관문(觀門)을 공부하지 않은 이는 비록 강의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는 믿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두루 다니면서 본래의 뜻을 이루었으니 앉아서 여러 책을 섭렵할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내가 세상에 배움에 뜻을 둔 무리를 보니 종일 공부하면서 배우는 까닭을 모르는 이가 많았다. 혹은 치우치고 사악함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명성과 이익에 빠지기도 하고, 혹은 교만하고, 혹은 게울러서 계속되기도 하지만 중단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몸을 마칠 때까지 도에 들어가지 못한다." (「示新參學徒緇秀」『大覺國師文集』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