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이의 역사 교실 권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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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사심관과 기인제도 사료
admin  (2009년 08월 07일 19시34분23초)  


태조 18년 신라왕 김부(金傅)가 내항(來降)해오니 신라국을 없애고 경주(慶州)라 하였다. (김)부로 하여금 본주(本州)의 사심(事審)이 되어 부호장이하직(副戶長以下職) 등의 일를 맡게 하였다. 이에 제공신(諸功臣)이 이를 본받아 각기 그 본주의 사심이 되었다. 사심관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고려사』75, 선거지3, 사심관조)

나말에는 제읍(諸邑)의 토인(土人)이 능히 치읍자(治邑者)를 호령하였다. 여조(麗朝)가 통합한 후에 이로 인해 직호(職號)를 내리고 그 (고을) 일을 맡아보게 하니 치민자(治民者)를 호장(戶長)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그 자제는 서울에 (머물게 하여) 인질로 삼고는 왕관(王官)을 보내 감독하게 하였는데, 성종 때에 이르러 왕관(王官)인 감읍자(監邑者)로 하여금 호장(戶長)을 통제케 하고, 드디어 강등하여 향리로 만들었다. (『연조귀감(曹龜鑑)』권2, 관감록 안동김씨가보 소인)

국초(國初)에 향리의 자제(子弟)를 뽑아 경성(京城)에 볼모로 삼고 또한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고문(顧問)에 비(備)케 하였는데 이를 기인이라 말한다.

(『고려사』권75, 선거지3, 전주 기인조)

기인은 1,000정(丁) 이상의 고을이면 족정(足丁)이라 하여 나이 40세 이하 30세 이상의 사람을 뽑아 올려 보내게 하며, 1.000정 이하의 고을이면 반족정(半足丁)이라 하여 병창정(兵倉正)이하 부병창정(副兵倉正) 이상을 막론하고 부강정직한 사람을 뽑아 올려 보내게 하되 족정은 15년을 기한으로 하고 반정은 10년을 한정하여 입역케 하며, 반정이 7년에 이르고 족정이 10년이 되면 동정직(同正職)을 허락해 주고 입역한 기한이 끝나면 관직을 더 준다. (『고려사』권75, 지29, 선거3, 전주 기인, 문종 31년)

사심관을 둔 것은 원래 민인을 종주(宗主)하고 관품을 구별하며 부역을 공평하게 하고 풍속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공전를 널리 차지하고 민호를 많이 숨긴다. 약간의 부역이 있으면 의례히 녹전(祿轉)을 거두는데 이렇게 되면 서울로 올라 온 향리를 사사집에서 장형(杖刑)을 결정하고 동(銅)을 징수하며 녹전을 도로 받는 등 위복(危福)을 마음대로 누리고 있다. 향촌에 해를 주고 국가에 도움이 없어 이미 다 혁파하였으니, 그들이 숨기고 있는 토지와 민호를 찾아내어 종전대로 하라. ...

기인을 노복보다도 더 심하게 사역하므로 그들이 고생을 견디지 못하여 도망하는 자가 잇달아 생기는데 해당기관에서는 날짜를 따져 그 대가를 징수하니, 주(州) 군(郡)들에서는 그 혜단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것을 사심관이나 제역소(除役所)의 음호(蔭戶)로써 대신하여야 할 것이며 전부 도망 간 주군에 대해여서는 그것을 면제할 것이다.

 (『고려사』권84, 지38, 형법1 직제 충숙왕 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