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이의 역사 교실 권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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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불국사와 석불사 관련 설화
admin  (2009년 08월 07일 19시32분22초)  


모량리(牟梁里)1)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한 아이가 있었다. 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한 것이 꼭 성(城)과 같아 이름을 대성(大城)이라고 하였다. 집이 빈곤하여 살아갈 수가 없어 그는 부자인 복안(福安)의 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여 그 집에서 얻은 몇 이랑의 밭으로 끼니를 잇고 있었다.
어느날 점개(漸開)라는 스님이 육륜회(六輪會)라는 법회를 흥륜사(興輪寺)에서 열고자 하여 복안의 집에 와서 시주하기를 원하자 복안이 베 50필을 바쳤다. 그러자 점개가 축원해 주었다. "신도가 보시하기를 좋아하면 천신이 항상 보호하여 하나를 보시하면 만배를 얻게 되고 안락과 장수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대성이 이 말을 듣고 뛰어 들어와 어머니께 말했다. "내가 문에서 스님의 말을 들으니 하나를 보시하면 만배를 얻는다고 합니다. 생각건대 우리가 전생에 닦은 선이 없어 이와 같이 가난하니 지금 보시하지 않으면 내세에는 더욱 곤란할 것입니다. 우리가 품팔이를 해서 얻은 밭을 법회에 보시하여 후일 과보(果報)를 도모함이 어떠하오리까?" 어머니가 좋다 하여 밭을 점개에게 시주하였다. 얼마 아니하여 대성은 죽었다.
이날 밤 국상(國相)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하늘에서 부르짖음이 있어 가로되, "모량리 대성이 이제 너의 집에 환생할 것이다"라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 모량리를 찾아보니 대성이 과연 죽었다. 그날 그 부르짖음과 동시에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왼손을 꼭 쥐고 펴지 않다가 7일만에 폈다. 그 손 안에 대성(大城)이라는 두 글자를 새긴 금간자(金簡子)가 있어 이로 인해 대성이라 이름하였고, 그 어미를 모셔다가 아울러 봉양하였다. 장성하여 사냥을 좋아하여,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가서 곰을 잡고 산밑 부락에 유숙하였다.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하여 시비하면서 말하기를 "네가 어째서 나를 죽였느냐. 내가 환생하여 너를 잡아 먹으리라"고 하였다. 대성이 두려워하며 용서를 청하였다. 귀신이 말하기를 "네가 능히 나를 위하여 불사(佛寺)를 세워주겠느냐" 하니, 대성이 맹서하여 좋다고 하였다. 꿈을 깨니 땀이 흘러 자리를 적시었다. 이후로 들에서 사냥하는 것을 금하고 곰을 위하여 그 죽인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이로 인하여 마음에 감동되는 바 있어 비원(悲願)이 더하였다.
이에 이승의 양친을 위하여 불국사(佛國寺)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불사(石佛寺)를 세우고 신림(神琳)과 표훈(表訓)의 두 성사(聖師)를 청하여 각각 거하게 하였다. …


장차 석불을 조각하려 하여 큰 돌 한 개를 다듬어 감개(龕蓋)를 만들다가 돌이 갑자기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 (대성이) 분노했다가 그 자리에 잠들었더니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서 다 만들어 놓고 돌아갔다. 대성이 일어나 남쪽 고개에 급히 올라가서 향나무를 태워 천신을 공양했다. 이로써 그곳을 향령(香嶺)이라고 부른다. …


절안의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경덕왕(景德王) 때에 대상(大相) 대성이 천보(天寶)8) 10년 신묘(辛卯)에 불국사를 세우다가 혜공왕(惠恭王) 때를 지나 대력(大曆)9) 9년 갑인(甲寅) 12월 2일에 대성은 죽고 국가에서 이를 완성시켰다.  


({三國遺事}5 孝善9 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