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이의 역사 교실 권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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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발해 건국관련 중국 기록
admin  (2009년 08월 05일 19시04분49초)  


발해말갈(渤海靺鞨)의 대조영(大祚榮)이란 자는 본래 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조영은 가속(家屬)을 거느리고 영주(營州)로 이사하였다. 만세통천년(萬歲通天年)에 거란(契丹)의 이진충(李盡忠)이 반란을 일으키매 조영은 말갈인 걸사비우(乞四比羽)와 함께 각기 망명자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나서 견고하게 지켰다. 진충이 죽자 측천(則天)은 우옥검위대장군(右玉鈐衛大將軍) 이해고(李楷固)에게 명하여 병사를 이끌고 그 잔당을 토벌토록 하였다. 먼저 걸사비우를 격파하여 목벤 다음 천문령(天門嶺)을 넘어 조영을 추격하였다. 조영은 고구려와 말갈의 무리를 합하여 해고에게 대항하자, 해고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해고는 몸을 빼어 달어나 돌아왔다. 거란과 해(奚)가 모두 돌궐(突厥)에 항복하자 도로가 막혀 측천이 토벌할 수 없게 되어 조영은 드디어 그 무리를 이끌고 동쪽 계루(桂婁)의 옛 땅으로 들어가 동모산(東牟山)을 거점으로 하여 성을 쌓고 거주하였다.


 


조영이 용맹하고 용병(用兵)하기를 잘하였으므로 말갈의 무리와 고구려의 남은 무리가 점차 그에게 귀복하였다. 성력(聖曆) 중에 스스로 진국왕(振國王)이 되어 사신을 보내 돌궐과 통하였다. ({舊唐書} 199下, 列傳149 渤海靺鞨)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이 고구려에 붙은 자로서 성은 대씨(大氏)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무리를 이쓸고 읍루(婁)의 동모산(東牟山)으로 들어 갔는데, 이 땅은 곧바로 營州에서 동쪽으로 2천리 떨어진 곳이고 신라의 북쪽과 니하(泥河)로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동쪽은 바다이며, 서쪽으로는 거란과 접하였다. 성곽을 쌓고 살자 고구려에서 달아나 숨었던 세력들이 점차 귀복하였다.


만세통천(萬歲通天) 중에 거란인 이진충(李盡忠)이 영주도독(營州都督)인 조문홰(趙文)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니, 사리(舍利) 걸걸중상(乞乞仲象)이란 자와 말갈 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 그리고 고구려의 남은 무리가 요수(遼水)를 건너 태백산 동북쪽 오루하(奧婁河)에 성을 쌓고 머물렀다. 무후(武后)가 걸사비우를 허국공(許國公)으로 삼고 걸걸중상을 진국공(震國公)으로 삼아 그 죄를 사면해 주려 하였다. 그러나 걸사비우가 그 명을 받지 않자, 무후가 옥검위대장군(玉鈐衛大將軍) 이해고(李楷固) 등으로 하여금 그를 쳐서 죽이게 했다. 이 때 걸걸증상은 이미 죽어 그 아들 대조영(大祚榮)이 남은 무리를 이끌고 달아나니, 해고가 이를 쫓아 천문령(天門嶺)을 넘었다.


조영은 고구려와 말갈의 병사로 해고를 막으니, 해고가 패하여 돌아 갔다. 이즈음 거란이 돌궐에 붙었으므로 왕(무후)이 보낸이 군대는 길이 끊겨서 토벌할 수가 없었다. 조영은 걸사비우의 군대를 합치고 땅이 험하고 멀다는 것을 믿고 나라를 세워 스스로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