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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학문


(  admin   2009년 08월 05일   )

고서(古書)에 이르기를 ‘백제는 개국(開國) 이래 아직 문자로 사실을 기록함이 없더니 이에 이르러 박사 고흥(高興)을 얻어 비로소 서기(書記)를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三國史記}24 百濟本紀2 近肖古王 30年)



(응신천왕) 15년 8월 무신삭(戊戌朔) 정묘(丁卯)에 백제의 왕이 아직기(阿直伎)를 보내어 좋은 말 2필을 바쳤다. 경(輕)의 산비탈 부근에 있는 마굿간에서 길렀는데, 아직기에게 사육을 맡도록 했다. ... 아직기가 또한 경전을 잘 읽으므로 태자 토도추랑자(道椎郞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때 천황이 아직기에게 묻기를 ‘혹시 너보다 뛰어난 박사가 또 있느냐’ 라 하니 대답하기를 ‘왕인(王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매우 뛰어납니다.’라 하였다. … 16년 2월에 왕인이 와서 태자 토도추랑자의 스승이 되었는데, 모든 전적(典籍)을 왕인에게서 배워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른바 왕인은 서수등(書首等)의 시조이다.({日本書紀}10, 應神天皇 15, 16년年)



백제는 … 오경박사(五經博士) 단양이(段楊爾)를 보냈다.({日本書紀}17 繼體天皇 7年 6月) 오경박사 고안무(高安茂)를 바치고 박사 단양이를 대신하려고 청하였다. ({日本書紀}17 繼體天皇 10年 9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