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신라의 학문 사료


(  admin   2009년 08월 05일   )

이찬(伊) 이사부(異斯夫)가 아뢰기를, "국사(國史)란 군신(君臣)의 선악(善惡)을 기록하여 포폄(褒貶)5)을 만대(萬代)에 보이는 것이니 역사를 꾸미어 두지 아니하면 후세에 무엇을 보고 알겠습니까"라 하니, 왕이 그러이 여기어 대아찬(大阿) 거칠부(居柒夫) 등에게 명하여 널리 문사(文士)를 모아 국사를 꾸미게 하였다.



임신년(壬申年) 6월 16일 두 사람이 함께 맹서하여 쓴다. 지금부터 3년 이후에 충도(忠道)를 유지하고 과실이 없게 할 것을 하늘 앞에 맹세한다. 만약 이 일을 잃으면 하늘로부터 큰 죄 얻을 것을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불안하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면 기꺼이 행할 것을 맹서한다. 또 별도로 앞서 신미년(辛未年) 7월 22일에 크게 맹서한 바 있다. 시(詩)· 상서(尙書)· 예(禮)· 전(傳)을 3년 안에 차례로 습득하겠다고.



({壬申誓記石})



 



박사(博士)·조교(助敎)와 대사(大舍) 2인을 진덕왕 5년에 두었다.({三國史記}38 雜志7 職官上 國學)



국학(國學)을 설치하고 경(卿) 1인을 두었다.({三國史記}8 新羅本紀8 神文王 2年 6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