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신라의 정치 관련 사료


(  admin   2009년 08월 05일   )

전한(前漢) 지절(地節) 원년 임자(B.C.69) 3월 초하루에 6부(部)의 조상들이 각기 자제(子弟)들을 거느리고 알천(閼川)의 언덕 위에 모두 모여서 의논했다. ‘우리들은 위로 백성을 다스릴 군주가 없어서 백성들이 모두 방자하여 마음대로 하게 되었소. 어찌 덕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지 않겠소.‘ 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 근처에 이상한 기운이 전광(電光) 처럼 땅에 드리워져 있는데, 흰 말 한 마리가 꿇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 살펴보니 붉은 알 한 개가 있었는데 말은 사람을 보더니 길게 울면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깨뜨려 보니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그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놀라고 이상히 여겨 동천(東泉)에서 목욕을 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해졌다. 그리하여 이름을 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 하고 위호(位號)를 거슬한(居瑟邯)이라 했다. ({三國遺事}1 紀異1 新羅始祖赫居世王)



음즙벌국(音汁伐國)이 실직곡국(悉直谷國)과 더불어 강역을 다투다가 (신라)왕에게 와서 결정해 줄 것을 청했다. 왕이 이를 난처히 여겨, 금관국(金官國)의 수로왕(首露王)이 연세도 많고 식견도 깊으니 그를 불러 물어보자고 했다. 수로가 논의하여 음즙벌국에 속하게 했다.



이에 왕이 6부(部)에 명하여 모여서 수로왕에게 향연을 베풀게 했는데, 다섯 부에서는 모두 이찬(伊)을 주(主)로 삼았으나 오직 한기부(漢祇部)만이 지위가 낮은 자를 주로 삼았다. 수로가 노하여 노(奴) 탐하리(耽下里)에게 명하여 한기부주(漢祇部主)인 보제(保齊)를 죽이게 하고 돌아갔는데, 노는 도망하여 음즙벌주(音汁伐主)인 타추간(陀鄒干)의 집에 숨었다. (신라)왕이 사람을 시켜 그 노를 찾아오도록 하였는데 타추(陀鄒)가 이를 보내주지 않자, 왕은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음즙벌국을 쳤다. 음즙벌주가 무리와 더불어 항복하니 실직(悉直)과 압독(押督)의 2국왕도 항복하였다.({三國史記}1 新羅本紀1 婆娑尼師今 23年(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