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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태동기] 

조선 수군의 몰살 칠전량 해전
권혁선  (2015년 09월 17일 09시45분09초)  


조선 수군의 몰살.

칠천량 해전 이야기

임진왜란 3대 승전이 있듯이 우리 역사에

기억 해야 할 3대 패전이 있다.

첫째는 정유재란 칠천량 해전 (1597년)

둘째는 병자호란 쌍령전투( 1636년)

셋째는 한국전쟁 동부전선 현리전투(1951년 5월) 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욕적인 패전이

거제 칠천도에서 벌어진 칠천량 해전이다.

1592년 시작된 임진왜란이

이순신의 해전 승리와 명의 참전.

그리고 명의 심유경과 일본 고니시의

화해 협약으로 왜군은 일본으로 물러간다.

그러나 협약의 내용이 거짓임을 알고 분노한

도요토미는 조선을 다시 침략하니 바로 정유재란이다.

이번에는 선봉장으로 가또가 왔다.

가또와 숙적인 고니시는 요시라를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보내 일본군의 정보를 일러주고

가또를 잡을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수군에 공격명령을 내린다.

당시 수군 통제사였던 이순신은 적이 전해준

정보라는 점과 이미 상륙한 왜군을 제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명령을 거부한다.

이순신은 어명을 어긴 죄를 물어 백의종군하여

옥에 갇힌 죄인의 몸이 된다.

후임에 오른 원균은 자기 부하들을 주요 보직에 임명하고

1597년 음력 7월 4일 거북선과

판옥선 200여척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조선 수군이 한산도를 출발해 계속 동진하는 동안

일본 수군은 계속 후퇴를 하였다.

승기를 잡았다고 오판한 원균은 왜군을 맹렬히 추격했고

부산포앞 저도 해상에서 왜군이 돌연 반전 조선수군을 일제히 공격한다.

이 와중에 20여척의 판옥선이 파손 당한다.

전초전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은 원균은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의 좁은 수로로 퇴각해 배들을

정박시키고 방치한다.

경상 우수사 배설이 안전지역으로 후퇴할것을

청했으나 원균은 말을 듣지 않는다.

배설은 12척의 배를 가지고 야반도주에 성공하니

12척의 판옥선은 조선수군의 전부가 되었다.

1597년 7월 15일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일본 수군이 칠천량을 급습한다.

전라 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는

끝까지 분전하다 전사하였다.

수군통제사인 원균은 전투명령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다가 배를 버리고 도주하다가

뒤쫓아온 왜군들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날 칠천량 해전에서 침몰된

조선 판옥선은 160여척이다.

거북선 3척도 그날 수장되었다.

그때 죽은 조선수군은 10.000여명이 넘는다.

이순신이 훈련시킨 동북아 최강의 조선수군은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칠천도 바다 깊숙히

수장되고 말았다.

무능한 지도자를 만났을때 백성이

어떻게 고통받고 무능한 장군을 만났을때

부하들이 오합지졸로 변해 아비규환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유일한 패전의 교훈을

전시하는 칠천량 해전공원이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에서 개관하였다.

경남도와 거제시는 이순신 프로젝트의 하나로

85억의 예산을 들여 칠천량 해전공원을

지난 2013년 7월 2일 오후 3시에 개관하였다.

무능한 리더와

현명한 지도자의 차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두번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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