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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김헌창의 난
권혁선  (2014년 04월 03일 13시25분47초)  


김헌창의 난은 작게는 원성왕(785∼798)계 귀족들과 무열왕(654∼661)계 귀족들 간의 제2차 왕위계승전이었고, 크게는 신라 하대에 계속된 크고 작은 왕위계승전들 가운데 하나였다. 『삼국사기』에는 김헌창이 그의 아버지 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 때문에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김주원은 무열왕계 왕족 중 가장 유력한 세력으로 785년선덕왕(780~785)이 죽자 귀족들에 의해 왕위에 추대되었지만, 김경신(훗날의 원성왕)의 정변으로 즉위하지 못하고 명주(지금의 강원도 강릉) 지방으로 물러난 사람이다.

김주원이 명주로 물러난 뒤, 계속 원성왕의 후손들이 왕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김헌창은 중앙에서 지속적으로 활약하였다. 807년(애장왕 8)에는 시중(侍中)이 되어 당시 원성왕의 후손인 상대등 김언승(훗날 헌덕왕)에 버금가는 실력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김언승이 애장왕(800~809)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듬해 1월 시중 직에서 밀려났다.

그 뒤 계속 헌덕왕파의 견제를 받아 813년(헌덕왕 5)에는 무진주(지금의 광주광역시)의 도독, 816년에는 청주(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의 도독이 되어 지방으로 가게 되었고, 821년에는 웅천주도독으로 전보되었다.

이처럼 헌덕왕 일파의 견제를 받는 가운데 웅천주도독으로 전보된 이듬해에 대규모의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김헌창이 그의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은, 당시 김헌창이 반란의 명분을 표방한 것에 불과하다.

귀족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왕위에 추대된 김주원이 김경신의 정변으로 즉위하지 못한 것을 공격한 것은, 원성왕의 즉위에 대한 합법성 및 당시 원성왕계 왕실의 합법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거사에 대한 합리화인 동시에 과거 김주원을 지지했던 귀족 세력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명분이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헌창의난 [金憲昌─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