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농기구류

( admin   2011년 03월 04일   )

홈자귀의 일반적인 형태는 3각기둥에 가까운 몸체에 폭이 좁은 편인(片刃)의 날이 세워진 모양으로, 종종 자귀몸의 평탄면에 길게 피홈[血溝]을 파둔 것도 발견된다. 함경도의 일부 지방을 제외한 한반도 거의 전역에서 발견되며, 주로 민무늬토기유적에서 나오는 점으로 보아 그 사용시기는 청동기시대 중기(BC 7세기)에 나타나 철기시대인 서기 전후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홈자귀의 형태 발생에 대해서는 크게 두 입장이 있다. 하나는 중국 남부나 태평양지역의 단(段)이 있는 돌도끼[有段石斧]에서 변형된 것으로, 중국의 농경문화와 함께 전래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이와는 전혀 관계 없는 독자적인 계열의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중국 남부에서 전래되었다는 설은 그 지역의 단이 있는 도끼들과 홈자귀 사이에 연결지워줄 석기가 없기 때문에 약점이 있다. 한편, 자체 발생설은 끈을 묶어 사용하는 홈이 한국에서 고안해낸 것이고, 그 분포가 간돌검[磨製石劍]의 분포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홈자귀의 용도에 대해서도 나무를 가공하는 목공구로 쓰였다거나, 농사를 지을 때 땅을 파는 괭이[掘地具] 또는 보통 쓰이는 도끼와 같은 기능을 갖는다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대구에서 채집된 수백 개의 홈자귀 중 사용된 흔적이 있는 것을 살펴보면, 날 부분이 연질(軟質)의
물체에 부딪치거나 찍었던 흔적이 보인다는 점과 날부분 등 필요한 부분만 갈아서 실용(實用)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가공구(加工具)의 역할 외에 땅을 파는 데 쓰는 굴지구(掘地具) 등 다목적 도구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 홈자귀는 청동제 도끼가 출현한 뒤에도 변동 없이 상용되었으며, 서기 전후에 중국제 철도끼가 들어옴으로써 다른 석기들과 같이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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