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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


(  admin   2011년 02월 14일   )

조선시대 군사비 충당을 위하여 정군에게 딸린 경제적 보조자. 세조 10년(1464) 보제(保制)를 시행함에 따라 정군(正軍)으로 번상(服務)한 집의 남은 가족을 재정적으로 도운 비번자(非番者)를 말하며, 대개 한 달에 포목 2필을 주었다.



전기에는 부병제 형태를 채택하여, 그에 따른 토지 지급은 따로 없이, 대신 봉족제(奉足制)라 하여 군인에게 여러 명의 양정(良丁)을 예속시켜, 그들로부터 군사활동에 필요한 경제적 보조를 받게 하였다.



봉족제는 조선 개국 초부터 있었으나, 태종 4년(1404) 이를 대폭 정비하여 대개 양정(良丁) 3명으로써 1호(戶)를 편성하고, 각 군인에 대해 최고 2호(6丁)까지 딸리게 하였다.



1464년 이를 전면개편하여 호 단위 대신 인정(人丁)을 기준으로 보법(保法)을 제정하여, 군사활동자는 정군이라 일컫고 그에 딸린 경제적 보조자는 보인이라 하였다.



양인(良人) 2정을 1보(保)로 하여 경제적 보조의 형태는 면포(綿布)로 하였다. 보인이 납부한 면포를 보포라 하며, 예종 1년(1469) 보포의 수량을 2∼4필로 정하였다. 성종 때 반포된 경국대전에는, 보인 1명이 군사활동 기간의 정군에게 1개월에 면포 2필을 넘지 못하게 하고, 정군이 직접 징수하도록 하였다.



임진왜란 후 모병제(募兵制)에 의해, 군인을 직접 국가에서 양성하는 훈련도감·총융청·수어청·어영청·금위영 등의 5군영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조선 전기의 정군·보인의 구별이 사실상 없어졌다. 즉 국가에 일률적으로 2∼3필 정도의 군포를 내는 보인의 입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