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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  admin   2011년 02월 14일   )

원균, 이억기 등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의 수군에게 대패한 후 조선의 수군에게는 단지 함선 12척밖에는 남지 않았다. 이순신이 수군 통제사로 복귀했을 때, 조정에서는 수군이 미약하므로 육군과 통합시켜야 한다는 의견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 적은 병력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것이 명량 대첩이다.



일본 수군은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서진을 계속하였다. 이 때, 이순신은 벽파진(진도)에 주둔하였는데, 왜 수군의 대선단이 접근하고 있다는 정보에 접하였다. 이순신은 곧 우수영(해남군 문내면)으로 옮기고, 명량을 결전장으로 정하였다. 명량은 '울돌목'으로서, 그 이름과 같이 간만 때에는 급류의 조수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좁은 목이다. 이 좁은 수역인 명량을 결전장으로 택한 이유는, 적은 수로 다수의 적을 대적할 수 있고, 또한 조류를 이용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 왜의 함선 130여 척이 명량으로 진입해 오자, 우리 수군은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이 싸움에서 왜선 31척을 격파하였으니, 12척과 130여 척의 해전에서 기적의 승리를 거둔 것이기에 명량 대첩이라 일컫는다. 이후, 일본 수군은 사기가 저하되어 조선 수군과의 접전을 기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