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토요토미 히데요시


(  admin   2011년 02월 14일   )

1536∼1598. 향년 63세. 일본 아즈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 무장. 오와리〔尾張〕출생. 천민에서 출세하여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뒤를 이어 일본을 통일하고 근세 봉건사회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오와리 나카무라〔中村〕의 농부 기노시타 야에몬〔木下彌右衛門〕의 아들이며, 모친도 오와리 태생이다. 7세 때 부친이 병사하고 모친이 재가함에 따라 양부(養父) 슬하에서 보냈지만 무사가 될 것을결심하고 집을 나와 도토우미쿠노〔遠江久能〕의 성주를 섬기다, 천문(天文) 23년(1554) 18세 때 오와리 키요스〔淸州〕의 성주인 오다 노부나가의 종복이 되었다. 1561년 오네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그때부터 기노시타 도키치로 히데요시〔木下藤吉郎秀吉〕라는 이름을 얻어 점점 두각을 나타내었다. 천정(天正) 1년(1573) 전공(戰功)을 세움으로써 아사이〔淺井〕의 소유인 3군(三郡)을 받아, 12만석(萬石)의 무사가 되고 기노시타를 하시바〔羽柴〕로 개명하였다. 영주이며 노부나가의 부장으로서 각지를 전전하며 활동하던 중 1582년 혼노사〔本能寺〕의 변(變)으로 노부나가가 횡사하자 후계자로 부상하여 87년 규슈〔九州〕를 정벌하고, 1590년 오다와라〔小田原〕·오우슈〔奧羽州〕를 평정하여 전일본의 통일을 이룩하였다. 끊임없는 전쟁의욕과 영토확장의 야망으로, 명(明)나라를 치기 위하여 길을 빌린다는 명목 아래 1592년 조선을 침략하여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1596년 재차 조선을 침략하여 정유재란을 일으켰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598년 전쟁과 후계자 문제 등 혼란 속에서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