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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루하치


(  admin   2011년 02월 14일   )

중국 청나라의 창건자·초대 황제. 1559∼1626(재위 1616∼1626). 향년 68세. 성 아이신줴뤄[愛新覺羅]. 시호 처음에는 무황제(武皇帝), 나중에는 고황제(高皇帝). 묘호 태조(太祖). 건주좌위(建州左衛) 여진(女眞)의 추장 각창안(覺昌安)이 그의 할아버지다. 만주의 푸순[撫順] 동쪽 훈허강[渾河] 변, 싱징[興京] 분지의 한 곳에 위치한 건주여진(建州女眞)의 한 추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1583년 처음으로 독립을 위한 군사를 일으켜 수년 사이에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87년 쑤쯔허[蘇子河] 상류에 최초의 성(城)인 싱징라오청(興京老城)을 구축하였다. 명나라에 대해서는 공손한 태도를 취하여 89년 명으로부터 도독첨사(都督僉事)로 임명되었으며, 95년 용호장군(龍虎將軍)의 칭호가 수여되었다. 99년에 해서여진(海西女眞)의 하다[哈達]를 멸망시키고, 이어 1607년에는 후이파[輝發], 1613년에는 우라[烏拉] 등을 병합하여 여진의 대부분을 통일하였고, 16년 한(汗)의 지위에 올라 국호를 후금(後金), 연호를 천명(天命)이라 하였다. 그 동안 여진문자를 발명하고 팔기제도(八旗制度)를 제정하였으며, 도성을 혁도아랍(赫圖阿拉)으로 옮겼다. 후금의 성립은 명나라에 커다란 위협이 되어 마침내 명과 충돌하게 되었는데, 18년에 명나라 푸순[撫順]을 급습하여 취하고, 이어 칭허[淸河]를 공략하여 빼앗았다. 19년에는 명나라와 일대 결전을 각오하여 진격, 푸순 관외의 사르프전투에서 명군 10만을 격멸하여 대승하였고, 21년에는 랴오둥[遠東]을 공략하여 랴오허강[遼河] 이동 지역을 지배하였으며, 랴오양[遼陽]에 천도하였다가, 25년에 다시 선양[瀋陽]으로 도읍을 옮겼다. 26년에 명의 영원성(寧遠城)을 공격하였으나 명장 원숭환(袁崇煥)의 고수로 실패, 부상만 입고 후퇴하였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해 4월 몽고의 파림(巴林)부를 직접 공략하다가, 도중 9월에 병사하였다. 그가 확립한 청조(淸朝)의 기초 위에 그의 아들들이 그 대업을 완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