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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 

한국 광복군 국내 진공 작전
권혁선  (2015년 08월 15일 10시03분42초)  


1945년에 시행하려고 했던 국내 진공 작전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8월 18일 미국군의 도움을 받아 수도 서울을 탈환하려고 했던 작전이다. 당시 미국은 전투기, 잠수함, 공수 부대를 지원해주기로 되어있었다. 이 작전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무산되었다. 미국 OSS 측에서는 독수리 작전이라고 불렀다.

배경
 
1943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임팔 전투를 비롯한 버마 전역에 한국 광복군을 파견하였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버마 전역에서 얻은 정보와 1945년 초 이오지마 전투오키나와 전투의 결과, 그리고 1945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진 일본 본토 공습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일본군의 패망이 앞당겨졌다고 보고 1945년 9월, 미국 OSS의 도움 하에 서울을 탈환하고자 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 무렵 국내에서는 조선 건국준비위원회가 건립되어 공화국 수립을 목표로 조선 총독부와 협상을 준비하고 있었고, 국외로는 베를린 공방전 이후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 영국, 프랑스 연합국에게 항복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됨으로써 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 각료들은 본디 계획보다 약 1달 동안 앞당긴 8월 18일을 서울 진공 작전 시작일로 수립했다.

전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단계를 구분하여 적진에 침투하고자 했다. 제 1단계는 폭격기를 통한 서울 및 인천의 일제 기관 폭격으로 이 단계를 통해 서울 및 인천 주둔 일본군에게 혼란을 주고자 했다. 제 2 단계는 공수 부대와 낙하산 부대를 통한 경인 공수 작전으로 이 작전에서 한국 광복군이 참여하게 된다. 제 3단계는 인천 지역을 통해 대한 광복군과 미군이 상륙하는 것으로, 이 작전이 본격적인 전투 단계가 된다. 마지막 제 4단계는 서울을 점령한 이후, 전국의 항일 단체에게 전투를 준비하게 하고, 일본군을 격살하여 조선의 완전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44년부터 미군과 함께 중국에서 오랜 시간 동안 훈련을 받았다. 또한 국내 정진군을 창설했다. 미국 OSS 당국 또한 임시 정부에게 적극적인 협조를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내 진공 작전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1945년 8월 11일, 소련군이 만주 지역을 탈환하고 웅기 상륙 작전을 개시함으로써, 한반도 북부의 관동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서울 탈환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작전 개시직전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으로 인해 작전이 진행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