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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프랑스의 반민족행위자 처벌
권혁선  (2013년 11월 05일 13시31분00초)  


프랑스의 반민족행위자 처벌

사법연대 ㅣ 기사입력 2009/12/20 [19:15]

프랑스의 반민족행위자 처벌

◈ 민족을 배반한 자에 대한 강력한 응징

프랑스는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했다가 4년 만에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우리에 비하면 프랑스의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벌은 아주 가혹했습니다. 민족을 배반한 자에 대한 강력한 응징이야말로 그 자체가 애국이며 정의였던 것입니다.

◈ 그들의 민족반역자처리법에 대하여 한번 보도록 하지요.

프랑스는 1944년 해방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민족반역자의 처리부터 서둘렀습니다. 그 일이야말로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의식"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로부터 50여 년 간을 그들은 일관되게 당시의 민족반역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처벌할 수 있었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964년 12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아래 법 때문입니다. 바로 [전쟁범죄에 관한 시효 제거를 규정한 법률]이라는 소급입법입니다. 해방 후 20년이라는 세월로도 모자라 아예 시효자체를 없애버린 거지요.

◈ 처형(사형) 당한 반민족행위자

공식적으로 처형(사형)당한 반민족 행위자 :11,200명

비공식적(즉결처분, 약식재판)인 처형(사형) 집계 : 12만 명에 달한 다는 설도 있다.

강제노역 선고 : 1만명

중노동 무기형 선고 : 3천명

공민권 박탈 선고 : 4만

★★★프랑스의 반민족언론에 대한 처리★★★

◈ 프랑스의 반민족 언론에 대한 처리는 일반인에 비해 더 엄격했습니다.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4년 동안 15일 이상 발행한 신문은 모두 나치에 협력한 것으로 간주, 폐간조치를 하고 신문사의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언론에 대해 이렇게 가혹한 처벌을 한 것은 이들이 신문을 통하여 독일의 정책수행을 도왔고, 대중의 여론을 오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언론을 개인의 부역과 같이 취급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처벌을 면한 신문은 "르 피가로", "라 크로와", "르 탕"지 등 3개 뿐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독일점령기간 중 자진 휴간함으로써 민족의 양심을 지킨 신문들입니다.

◈ 언론에 대한 처벌 뿐 아니라 언론인에 대한 처벌은 더욱 가혹했습니다.

독일에 협력하였던 많은 언론인들이 처형을 당했습니다. 가장 가벼운 처벌이 다시는 언론에 종사하지 못하게 하는 공민권 박탈이었습니다.

◈ 참고로 다른 유럽의 나라들을 볼까요?

부역행위로 구속된 사람의 숫자로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프랑스 : 10만명 당 94명

벨기에 ; 10만명 당 596명

네덜란드 : 10만명 당 419명

노르웨이 : 10만명 당 633명 이라고 하니

프랑스는 노르웨이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던 셈이지요.

거기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는 아예 소급입법까지 만들어 기소를 하였습니다. 또한 폐지시켰던 사형제도 까지 다시 부활시켜서 처단을 했다고 합니다. 반민족행위에 대한 그들의 증오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지 않습니까?

◈ 이에 비해 한국을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반민법이 제정된 이후부터 폐지될 때까지 반민족 행위자의 처벌 현황을 보면 특별 위원회는 총 688명의 반민족행위자를 취급했으며 이 가운데 599명이 특별검찰부로 송치되었다. 특별검찰부는 송치된 사람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293명을 기소했으며 306명을 불기소 처분하였다. 기소된 사람들 중 법의 처벌을 받은 반민족 행위자는 총 79명이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자는 10명에 불과하였다.

아래 글은 조선일보와 조광(월간조선의 전신)이 일제강점기에 쓴 기사입니다.

▶ 천황폐하와 황실가족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충과 의를 다 바치겠습니다.

▶ 한일합방은 조선의 행복을 위한 조약이다.

▶ 은혜로운 한일합방 30주년을 맞아 쓸데없이 독립이니 뭐니 하는 유언비어에 귀 기울이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시국인식을 반성하라.

▶ 일본군 입대는 조선인의 영광....황국신민이 된 사람으로 감사치 아니하랴,.....(이런 기사로 청년들을 선동, 이에 격분하는 민중을 향한 조선일보의 대답은 "동포여, 자중하라"였습니다.

▶ “조선의 국어[일본어]보급률 36%는 대만 등지에 비하면 훨씬 뒤떨어진 것”이라고 개탄하며 황민화 정신과 일본정신을 체득하기 위해 우리말과 글을 버리고 일본어를 생활화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함.

유럽 사람들의 기준으로 따져본다면 조선일보는 그 전 재산을 진작 몰수당해야 했습니다. 1933년 7월 제9대 사장으로 취임하여 조선일보를 인수한 후, 1934년 자신의 사재를 털어 고사포를 구입, 일본군에 기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일제의 침략전쟁에 전 국민이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전국 순회강연에 다니면서 다양한 친일행각을 벌인 방응모 또한 즉시 사형당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끄럽게도 일제 강점기의 반민족 언론인과 민족반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청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민족지였다고 하는 거짓말을 하며.. 국민을 속이는 조선일보의 악행을 눈 시퍼렇게 뜨고 보며 살고 있습니다.

2006년 조선일보 창간 86주년 기념사에서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이 뭐라 한지 보여드릴까요?

‘조선일보는 창간 후 지금까지 갖가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86년이란 연륜을 쌓아 왔습니다. 일제시대에는 빼앗긴 나라 찾기에 전념하며 수많은 정간과 압수, 폐간 등을 겪으며 일제에 저항했습니다. 해방 후 혼돈기와 경제성장기에는 나라 만들기에 주력하면서, 언론활동이 크게 위축됐습니다.’

조선일보의 정간은 방응모 인수 전인 배일파와 민족주의자들이 조선일보를 운영할 때 일어난 것이고.. 폐간도 강제폐간이 아닌 일제에 협조하기 위한 자진폐간이었음을... 조선일보 관계자들도 알고.. 알만한 네티즌들도 다 알고 있거늘 어찌 저런 거짓말을 창간기념사에서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해방 직후 처리했어야 했는데.. 그 때를 놓치고.. 지금까지 조선. 동아가 날뛰게 두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두 신문에 홍진기가 설립한 중앙일보.... 홍진기는 일제 때 판사를 지낸 인물로 이승만 정권이 전격 발탁하여 법무부 장관을 지내다가.. 4.19 혁명 당시에는 내무부장관을 지내면서 이승만에게 계엄령을 전격 건의한 인물입니다. 그런 연고로 4·19혁명 이후 옥고까지 치렀습니다. 이런 인물이 설립한 중앙일보와 조선과 동아가 합쳐서.. 신문시장점유율이 70-80%가 된다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국민은 민족정기는커녕 자존심도 없는 민족 같습니다. 땅바닥에 더 메어쳐야 더럽고 서러운 구덩이에서 뒹굴어야... 정신을 차릴 민족 같습니다. 어찌 조국과 국민을 팔아 이익을 보려 했고.. 독재자에 붙어 이익을 보려했던 범죄집단의 신문을 제 정신 가지고 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제 저 조중동이 방송까지 장악하고자 발악을 하나 봅니다.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기가 너무 괴롭습니다. 정도껏 해야 하는데... 그 정도를 넘어서도 너무나도 넘어 선 사태를 보면서... 말기 증세가 왔구나..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는구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눈에 마가 씌워서 역사에서의 교훈을 얻을 수 없나 봅니다.

언제나 큰 변화가 오기 전에는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극단적 행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MB가 촛불의 힘에서 보여준 국민의 거대한 힘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국민과 소통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국민의 입과 눈과 손을 묶어버릴 생각만 하고 있는 것처럼.. 조중동도 이번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국민의 깨우침에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들이 변화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여론을 장악해서 다시 국민을 속이고자 악수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두는 악수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지... 반복되는 역사가 증명해줄 것입니다.

기사입력: 2009/12/20 [19:15] 최종편집: ⓒ yeslaw.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