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이의 역사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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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허정 과도정부
권혁선  (2013년 10월 28일 19시36분08초)  


4.19혁명이 성공하고 이승만이 물러난 후 대통령과 부통령직이 모두 공석이 되자 자유당 정권에서 외무장관이었던 허정이 과두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허정은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 이승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인물이었으나 자유당과는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았던 온건한 우파 정치인이었다.

허정 과도정부는 자신의 임무를 4월 혁명의 과업을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수행하고 차지 정권에 정부를 무시하 이양해 주는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여기에서 차기 정권에 권력 이양이란 민중부분은 제외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허정은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우선적인 것은 법과 질서의 회복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단호히 수행할 것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 점은 1960년 5월 3일 발표한 '과도정부의 5대 시책'에 잘 나타나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반공주의 정책을 한층 더 건실하고 착실하게 진전시킨다.
2. 부정선거의 처벌 대상은 책임자와 잔학 행위를 한 자에게 국한시킨다.
3. 혁명적 정치 개혁을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단행한다.
4. 4월 혁명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내정간섭 운운하는 것은 이적 행위로 간주한다.
5.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일본인 기자의 입국을 허용한다.

그런데 법과 질서의 회복방침은 4월 혁명의 과업 수행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과도정부는 회복 방침에 따라 7.29 총선 15일 전까지 계엄령을 발동해 민중의 정치 활동을 위축시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당시 계엄 사령부는 중립을 표방했음에도 각종 사회 단체의 출현과 정당의 활동을 제재, 간섭했다. 그리고 이승만의 처벌 및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정치 시위에 대해서도 시위자를 구속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으며 사업장 마다 속출하던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쟁의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이러한 과도정부의 방침은 이승만 정권의 권력 블록이 동요하는 것을 수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숭만의 권력 블록이란 경무대측근, 자유당 고위층, 정치화된 경찰 및 군부의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에 대한 처벌을 과도정부사 소수의 고위 책임자와 잔학행위를 한 인사들로 국한시키므로써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부정축재자 처벌에 있어서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과도정부의 정국 운영은 정권이양에서부터 많은 문제점을 들러내고 있었다. 허정은 이승만을 옹립한 채 국회애서 내각책임제를 개헌하고 만주당 구파와 자유당 혁신파의 연합으로 정국을 수습하려 하였으나 당초 구상이 차질을 빚자 민주당 신파가 정권을 잡고 민주당 구파와 자유당 연합 세력이 야당을 하는 정계개편의 구도로 바뀌게 되었다.

 여기에는 강력한 반공정부를 유지하는 것과 진보세력의 진출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도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개헌이 끝난 후에 총선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허정은 현 국회를 개헌한 후 총선을 해야한다는 정치 일정을 받아들이고 정권 이양 문제를 국회에서 처리하도록 방임하였다. 이러한 국회에의 방임은 정권 이양에서 4월 혁명 주도세력을 배제하고 붕괴 직전의 보수 세력의 원상 회복을 도모하고 보수 정치 지형을 그대로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