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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 

신한청년당
권혁선  (2013년 10월 27일 15시51분03초)  


1918년 8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창립된 한인 청년독립운동단체다.

김규식(金奎植) 서병호(徐丙浩) 여운형(呂運亨) 선우혁(鮮于爀) 문일평(文一平) 신규식(申奎植) 신채호(申采浩)가 발기를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기회에 외교 활동을 통해 독립을 이루자는 뜻으로 설립했다.

명칭은 여운형이 터키의 정치인 케말 파샤(Kemal Pasha)의 터키청년당을 모방해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한청년당은 취지서에서 대한민국 독립의 완성, 민족의 정신적 개조, 학술•산업의 발전을 통한 실력양성, 신문화로 전인류에 기여 등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밝혔다.

당의 강령은 대한독립, 사회개량, 세계대동(世界大同) 등 3가지였다. 재무부, 교제부, 토론부, 체육부, 출판부, 서무부 등 6개 부서를 두었으며 회원은 150여명이었다. 신한청년당이 특히 주력한 것은 외교와 네트워크 구축이었다. 1918년 12월 독립청원서를 미국의 윌슨(Wilson) 대통령에게 보냈으며 1919년 1월에는 영어에 능숙한 김규식을 보내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해 조선의 독립을 촉구했다. 또 여운형을 러시아에, 장덕수(張德秀)를 일본에 각각 파견하고 선우혁과 서병호를 한국으로 보내는 등 도쿄(東京), 연해주, 국내와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들은 일본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에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는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1919년 12월 1일에는 기관지로 <신한청년(新韓靑年)>을 창간했다.

3•1운동 직후 상하이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독립문제를 의논했는데 이때 신한청년당 활동가들이 중심이 됐다. 이들은 프랑스 조계 안에 임시 독립사무소를 열고 임시정부 수립문제를 논의했다. 일부에서 임시정부의 수립을 주장하자 여운형 등은 임시정부라는 명칭이 부담스럽다며 새로운 정당을 세우자고 맞섰지만 결국 임시정부 수립을 추진하게 됐다. 신한청년당의 외교활동과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이 가끔 혼란을 일으키고 심지어 신한청년당과 임시정부를 혼동하는 일까지 일어나면서 임시정부 측이 해산을 요청해 1922년 12월 자진 해산을 결정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한청년당 [新韓靑年黨]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정치행정 분야, 용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