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합단

( admin   2011년 01월 25일   )

1920년 8월 김시황(金時晃)·김동식(金東植)·백운기(白雲起) 등이 평북 의주군 동암산(東岩山)에 본거를 두고 조직한 항일무장단체.
목표는 조선 각 지방의 부호들로부터의 독립운동자금모집과, 암살대를 조직하여 군자금 제공을 거절한 부호·친일밀정 등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단원수는 500여 명으로, 김중량(金仲亮)·김유신(金攸信)·박초식(朴楚植)·이광세(李光世)·김도원(金道源)·이일화(李壹華)·이윤성(李允成)·김병규(金炳奎)·조원세(趙元世) 등이 포함되었다. 단장은 김시황, 총무는 김동식, 재무는 백운기, 선전은 김도원, 소집(召集)은 박초식·이광세 등이었다.


단원은 화승총·권총 등 무기를 구입하고 맹훈련을 받은 뒤, 평북의 선천·철산·용천(龍川)·의주 등에서 일제의 행정기관 파괴, 밀정 숙청을 단행하였으며, 일본군 대부대와도 여러 차례 싸웠다. 1920년 9월 김시황이 간부·단원 수십 명과 함께 선천군 산면 내산사(內山寺)에 머무르던 중, 중의 밀고로 수백의 일본군에게 공격을 받았다. 이 싸움에서 한우종(韓禹宗)은 전사하고 김시황은 부상당하였으나 일본군 2명을 사살, 5명을 중상시킨 뒤 단원 전체가 후퇴하였다.


그해 10월 동암산의 본거지를 떠나 남만주로 가던 중, 만주 안둥[安東] 근처의 싼다오거우[三道構]에서 일(日)·중(中)의 경찰대에 포위되어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일경(日警) 2명, 중국경찰 3명을 사살하였으나, 보합단원 박완식(朴完植)·박형식(朴亨植)·김내찬(金乃贊)·심창숙(沈昌淑)·김흥도(金興道)·김정석(金貞碩) 등이 전사하였다. 그 뒤 서만주 서간도(西間島) 콴쉰현[寬甸縣]으로 가서, 대한독립단과 합류하였다. 1923년 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광복군총영 등이 통합하여 대한통군부를 만들 때, 이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