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 admin   2011년 01월 18일   )

1932년 김원봉(金元鳳)이 의열단과 조선혁명당 조직의 강화와 민족해방운동에 필요한 전위혁명가를 양성하기 위해 중국 난징[南京]에 설립한 군사정치 교육기관.


1931년 만주사변과 이듬해에 일어난 상하이 사변으로 중국에 항일 분위기가 고조되자 김원봉과 의열단 지도부는 난징에서 중국국민당 내의 정보기관인 삼민주의역행사(三民主義力行社)와 접촉하여 한중합작의 항일운동을 제의했다.


그결과 1932년 4월 의열단 활동에 대한 지원을 위해 역행사 내에 간국훈을 주임으로 하는 민족운동위원회가 발족되었다. 같은 해 9월 의열단 제6차 정기대표대회에서 “한·중 합작으로 군관학교를 설립하여 한국의 혁명조직에 필요한 전위투사를 양성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김원봉 등이 중국의 황푸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학교는 표면적으로는 중국국민정부 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 제6대로서 중국 청년 간부훈련대로 위장하고 중국측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지만 운영, 교육, 졸업생에 대한 조치 등은 의열단의 자율적 책임하에 이루어졌다.


교육기간은 6개월이었고 교과목은 크게 정치과와 군사과로 나누어져 철학, 유물사관, 변증법, 각국 혁명사, 삼민주의, 한국역사, 전술학, 자연과학 등으로 구성되었다. 교관은 김원봉·이영준·박건웅·권중환·윤세주·신악 등 의열단 간부 및 졸업생들이 맡았다.


입교생은 주로 20대 청년층으로 1935년 9월까지 3년 동안 1기생 26명, 2기생 55명, 3기생 44명 등 125명을 배출했다. 졸업생 다수는 국내와 만주지역에 파견되어 대중조직사업·무장조직준비 등 항일공작을 벌였는데 1933년말부터 1년에 걸쳐 '남경군관학교사건'으로 35명이 일제에 잡혔다.


1935년 7월, 5개 재외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조직으로 민족혁명당이 창당되고 기존조직 해체를 결의함에 따라 의열단이 해체되자 간부학교도 해체되었다.


1936년 민족혁명당 군사부 훈련반이 창설되어 간부학교의 경험을 계승하고, 졸업생들이 조선의용대·광복군·조선독립동맹에서 항일투쟁을 한 데서 보이듯이 이 학교는 독립운동 간부양성의 선구적 기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