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단

( admin   2011년 01월 18일   )

1919년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비밀 항일독립운동단체.

3·1운동 뒤 보다 조직적이고 강력한 독립운동단체 조직의 필요성에 따라 1919년 11월 급진적인 민족주의노선을 지향하며 조직되었다. 이 이름은 ‘정의(正義)의 사(事)를 맹렬(猛烈)히 실행한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창단 단원들은 신흥무관학교출신들이 중심이 되었고, 고문에는 김대지·황상규, 단장에는 김원봉, 단원에 윤세주·이성우·곽경·강세우·이종암·한봉근·한봉인.김상윤·신철휴·배동선·서상락·권준 등 13명이었다.


의열단의 지도이념 정립에는 김대지·황상규의 영향이 컸으며, 1923년 신채호가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하여 독립투쟁노선과 행동강령을 체계화하였다.

여기에서는 민중의 직접적 혁명과 평등주의에 입각하여 당시 일부 민족주의자들의 독립운동노선이었던 문화주의·외교론·준비론 등 일체의 타협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폭력적 민중혁명을 통한 독립쟁취를 목표로 하였다.

그 결과 의열단의 강령 및 이론은 점차 사회주의이론을 수용하게 되어, 1928년 <창단9주년기념성명>을 계기로 순수한 민족주의노선에서 계급적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급진적 민족주의, 사회주의노선으로 전환하였다.

의열단의 독립운동 지침으로는 구축왜노(驅逐倭奴)·광복조국·타파계급·평균지권(平均地權)을 기본강령으로 하고, <공약10조>와 <5파괴> <7가살(可殺)>을 기본규약으로 하였다.

공약 10조는 ①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
②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을 희생하기로 함.
③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 함.
④ 단의(團義)에 선(先)히 하고 단원의 의(義)에 급히 함.
⑤ 의백(義伯) 1인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함.
⑥ 하시(何時) 하지(何地)에서나 매월 1차씩 사정을 보고함.
⑦ 하시 하지에서나 매 초회(招會)에 필응함.
⑧ 피사(被死)치 아니하여 단의에 진(盡)함.
⑨ 1이 9를 위하여 9가 1을 위하여 헌신함.
⑩ 단의에 배반한 자는 처살(處殺)함이다.


<5파괴>의 대상은 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매일신보사·경찰서 및 기타 일본제국주의의 중요기관 등이었고, <7가살>의 대상은 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타이완총독, 매국노, 친일파거두, 적탐, 반민족적 토호열신(土豪劣紳) 등이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지도부는 상하이에서 김성근을 초청하여 폭탄 제조기술을 단원들에게 가르치는 한편, 세력확대에도 힘써 1924년 무렵에는 중국인을 포함한 70여 명의 결사단원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1929년 12월 베이징에서는 ML파와 합동하여 조선공산당재건동맹을 조직하였는데, 의열단은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급진좌파로 변신해갔다.


후일 한국민족운동사에 이름을 남긴 김구·김규식·김창숙·신채호 등을 실질적 고문으로 삼고 장제스〔蔣介石〕 중화민국총통의 후원도 받았다.


의열단의 주요 활동으로는 밀양·진영 폭탄반입사건, 부산·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조선식산은행 및 도쿄 니주바시 폭탄투척 의거, 상하이 황포탄 의거,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및 삼판통·효제동 의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