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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함화 11년 발해 중대성첩
 권혁선  2015.04.04, 조회 :1130 

앨범 표지

개설

841년 겨울 사신 106명이 발해를 출발해 일본 장문국에 도착했다가 이듬해 4월 귀국했다. 이 사신단 일행이 지참했던 문서의 사본이 「함화11년중대성첩사본()」이다.

편찬/발간 경위

함화 11년(841) 윤9월 25일 발해의 정당성 춘부경인 하수겸과 대내상인 대건황(훗날 발해의 제12대 왕)의 명의로 일본 태정관에 보내는 첩이 작성되었다. 이듬해 3월 28일 이 첩은 실제로 태정관에게 제출되었다. 후에 그 사본이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서 소장하고 있는『임생가문서』고왕래소식잡잡 2권 중 제1권에 사본이 수록되었다. 1950년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서 발간된『도서료전적해제』역사편에 사진이 실리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서지적 사항

세로 29cm, 가로 48.8cm이며, 종이는 엷은 흑색의 숙지(宿)이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대성첩을 요약한 것이『속일본후기』권11과『유취국사』권194에 남아 있다.

내용

서두에서 발해국 중대성이 일본국 태정관에게 보내는 글임이 명시되었다. 이어 사신의 대표인 사두(대사) 하복연 외에 사사(부사), 판관(중요사무 처리 관직), 녹사(문서·잡무 처리 관직), 역어(통역관), 사생(문서담당 하급관리), 천문생(항해시의 항로 선정과 기상 예측 담당자), 대수령(말갈족 출신의 지방토착세력), 초공(선원) 등 105명의 수행원을 파견함을 알렸다. 이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왕래가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우의를 돈독히 하고 예를 닦기 위한 것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발송 일자와 함께 발송 명의자가 하수겸·대건황임을 밝혔다.

의의와 평가

이 문서는 발해와 일본 사이에 오고간 외교문서의 체제를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이다. 이를 통해 일본과의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발해의 정당성이 외교 면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친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중대성의 왕명출납 기능, 동궁제()·수령제·관제·지방행정제도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함화11년중대성첩사본 [咸和十一年中臺省牒寫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